작가 노트
본능과 직관의 언어
회화는 내게 가장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는 매체이다. 예를 들어 내가 몸소 느끼는 일상의 ‘지루함’은 페인팅이라는 행위를 통해 ‘불안’과 ‘폭력’이라는 변형된 모습으로 캔버스 위에 드러난다. 이러한 회화적 언어는 복잡한 질문과 연구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대답을 주기도 한다.
미완과 실패의 유기체
그러나 회화적 언어를 사용하여 주제와 의도를 가진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것은 회화의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한다. 회화의 생성과 소멸이 나의 노동과 매 순간의 직관적 판단에 내맡기게 되었을 때 ‘덧바르기’와 ‘지우기’의 반복 행위가 발생한다. 이는 결국 너무 ‘많이’ 그렸거나 너무 ‘덜’ 그려진 실패작 혹은 미완성작을 생산해 낸다. 이렇듯 아직 과정 위에 있거나 실패로 판단된 작업들은 보통 작업실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보관되다가 (나의 경우, 혹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경우) 작업실을 이사하는 날 그 작업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 버리느냐, 마느냐. 보관하느냐, 보관하되 캔버스 틀은 버리고 그림만 뜯어 보관하느냐, 아니면 통째로 보관하느냐... 이러한 고민의 무게는 캔버스의 크기와 부피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두텁게 덧입혀진 물감의 무게와 그 작업에 쏟아부은 돈과 에너지에 비례한다. 4년이 넘는 외국 생활 덕분에 이사를 일 년에 두 번(집과 작업실)은 기본으로 하였고, 그때마다 한 장의 이미지로서의 그림은 나의 통제하에 그려졌던 이전과는 달리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진 하나의 덩어리, 거대한 괴물처럼 내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회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 미술관에 보관되어 빛, 온도, 습도를 조절 받는 의존적인 물체가 아닌, 오히려 살아서 늘 변화하는 모습을 가진 하나의 유기체로 회화를 대하게 된 것이다.
실패작의 100가지 가능성
<100 Folding Paintings> 는 캔버스 틀에서 분리된 채 보관되었던 한 장의 유화작업을 백 가지의 다른 형태로 접어 기록한 사진 작업과 작품 제작 과정을 퍼포먼스 영상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또한 백 가지의 기록물이 모두 나왔을 때 사진 작업은 접을 수 있는 아트북 형식의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이처럼 나의 실패는 회화의 죽음이 아닌 다른 삶으로 연결되는 시작이 된다. 나는 회화를 접음으로써 내가 그렸던 이미지를 아주 조금씩 부분적으로 보여준다. 그림이 접혔을지라도 이미지 부분은 아직 두텁게 올려진 유화물감 특유의 냄새와 질감을 간직한 듯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은 캔버스의 뒷면에 우연히 남겨진 페인트의 흔적들과 주름, 먼지, 그리고 풀어진 캔버스천 실오라기 등이 함께 기록된다. 이를 통해 나는 이미지 생산자로서 화가의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아주 부분적으로 이미지를 노출했을지라도), 실패 그 이후의 과정을 보여주며 회화라는 매체의 변화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험해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끊임없는 순환
작업과 연관 지어 나를 설명할 때, 나에게는 두 가지 정체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즉, 말 그대로 이미지 혹은 환영의 생산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보는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 이 둘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먼저 그려진 작업의 이미지가 ‘접는 그림’(Folding Paintings)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웹에서 보여주기 위해 스캔한 드로잉이 예상치 못한 잔상을 생산해 내었을 때 그 패턴은 캔버스에서 추상적인 이미지로 재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나를 오직 “페인터”로서의 역할에 머물지 않게 하며 작업 과정에서의 발생하는 모든 요소는 서로 교환될 수 있고 동등한 입장을 가지게 된다.
2011.10.구지윤